살다보면, 일하다 보면 미치게 힘든 사람이 있지요. 또 어떤 이에게는 내가 그런
사람이기도 하구요. 그럴 때 한 번씩 되새겨볼 내용입니다.
정토회 지도법사이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입니다.
질문 : 독단적으로 자기 생각만 강요하거나 권위적으로 지시하는 사람과 얘기할 때는
강한 반발과 분별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말투도 부드럽지 못합니다. 제 업식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고 이해해
보려고 하나 그런 사람과 얘기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불쾌한 마음이 올라오게 됩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좋을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안녕히 계십시오’예요. 공연히 시간 들여서 이것을 극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껴 썼어도 차가 완전히 고장 났을 때는 폐차하는 게 나아요. 쓸 만한데
버리는 게 문제지요. 이렇게 말할 정도면 굳이 이것을 개선하려고 하지 말고 관계를 청산하세요.
만약 직장 상사라면, 현재 200만 원 월급 받는 데서 100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직장을 옮기는 게 낫습니다.
아마 말은 안 했지만 부부지간이든 직장 상사든 피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질문했겠지요.
그래도 ‘안녕히 계십시오.’ 해 버리세요. 그런데 지금 말한 것보다도 다른 이해관계가 더 크기
때문에 도저히 ‘안녕히 계십시오.’ 할 수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풀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안녕히 계십시오.’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에서 제외해야 한다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같이 지내려면, 같이 살려면 내가 상대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놈 고집 세다’ 할 때
분석해 보면 상대가 고집 세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고집을 꺾으려는 나의 의지도 대단하지요.
이 세상에서 제일 고집 센 사람을 내가 꺾으려니까 내 고집도 보통 고집이 아니지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를 들면, 칼을 허공에 휘두르면 부딪치지 않지요. 이때 칼이 단단한지 안 단단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칼을 나무토막에 부딪쳐서 나무토막이 부러지면 칼이 단단한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처럼 내가 거기에 부딪치기 때문에 상대가 고집이 세다는 것을 내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이러자” 할 때 내가 “예, 그러죠” 하고, “저러자” 할 때 “예, 그러죠, 뭐” 하면 상대가 고집이 센 것이
아니지요. 상대방이 독단적으로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권위적으로 지시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느낀다는 것은 나도 굉장히 고집이 센 사람이고 내 의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칼과 칼이 부딪혀 소리가 나고 상처가 많으니까 나를 숙여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지요. ‘독단적이다, 권위주의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저 사람 성격이 저렇구나, 말을 저런 식으로 하는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장점이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연애할 때 남자가 모든 일에 결정도 빠르게 하고 리더십도 있으면 ‘야, 멋있다’ 하고 반하지요.
그런데 이런 남자하고 결혼해서 살아보면, 남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독단적으로 결정하지요.
음식을 만들 때 칼이 너무 잘 들면 무 썰기에 좋지만 때로는 손가락을 베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이 남자는 참 부드럽고, 내 얘기도 귀담아 들어주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도 안 하고, 대화도 참 잘 된다.’
하는 좋은 느낌을 받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 이 남자는 남자다운 게 없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쭈뼛거리고, 리더십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 눈치나 보니, 그 아내는 답답해서 못 삽니다. 그래서 부인들은
남편에게 “강한 남자가 돼야 해” 하고 요구했다가 “부드러워야 해.” 했다가 “일 처리는 칼처럼 날카롭게 해.”
하면서 만능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교양도 있으면서 위엄도 있어야 하고, 거기다 야성적이어야
하면서도 부드러워야 하고 재미도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런 남자는 절대로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법문을 듣는 입장이니 저를 스님이라는 자리에 놓고 저의 한 가지 면만 보니까 제가 좋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같이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요? 같이 살게 되면 법문하는 저의 한 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다른 모습들도 보게 되겠지요. 그러다 보면 실망할 일도 생길 겁니다. 그런
실망들이 쌓이면 함께 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듯이 아무리 좋아 보이는 남자도
같이 살다보면 실망할 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성에 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게 다 나쁘다거나 모든 게 다 좋은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과 같이 살 수밖에 없다면, 또는 계속 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다면, 그 사람의 단점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장점과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그 사람의 특징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아침에 팀원들과 함께 했던 글입니다.
많이 느끼는데 변하지 않아서리....
사람이기도 하구요. 그럴 때 한 번씩 되새겨볼 내용입니다.
정토회 지도법사이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입니다.
질문 : 독단적으로 자기 생각만 강요하거나 권위적으로 지시하는 사람과 얘기할 때는
강한 반발과 분별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말투도 부드럽지 못합니다. 제 업식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고 이해해
보려고 하나 그런 사람과 얘기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불쾌한 마음이 올라오게 됩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좋을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안녕히 계십시오’예요. 공연히 시간 들여서 이것을 극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껴 썼어도 차가 완전히 고장 났을 때는 폐차하는 게 나아요. 쓸 만한데
버리는 게 문제지요. 이렇게 말할 정도면 굳이 이것을 개선하려고 하지 말고 관계를 청산하세요.
만약 직장 상사라면, 현재 200만 원 월급 받는 데서 100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직장을 옮기는 게 낫습니다.
아마 말은 안 했지만 부부지간이든 직장 상사든 피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질문했겠지요.
그래도 ‘안녕히 계십시오.’ 해 버리세요. 그런데 지금 말한 것보다도 다른 이해관계가 더 크기
때문에 도저히 ‘안녕히 계십시오.’ 할 수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풀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안녕히 계십시오.’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에서 제외해야 한다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같이 지내려면, 같이 살려면 내가 상대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놈 고집 세다’ 할 때
분석해 보면 상대가 고집 세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고집을 꺾으려는 나의 의지도 대단하지요.
이 세상에서 제일 고집 센 사람을 내가 꺾으려니까 내 고집도 보통 고집이 아니지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를 들면, 칼을 허공에 휘두르면 부딪치지 않지요. 이때 칼이 단단한지 안 단단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칼을 나무토막에 부딪쳐서 나무토막이 부러지면 칼이 단단한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처럼 내가 거기에 부딪치기 때문에 상대가 고집이 세다는 것을 내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이러자” 할 때 내가 “예, 그러죠” 하고, “저러자” 할 때 “예, 그러죠, 뭐” 하면 상대가 고집이 센 것이
아니지요. 상대방이 독단적으로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권위적으로 지시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느낀다는 것은 나도 굉장히 고집이 센 사람이고 내 의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칼과 칼이 부딪혀 소리가 나고 상처가 많으니까 나를 숙여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지요. ‘독단적이다, 권위주의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저 사람 성격이 저렇구나, 말을 저런 식으로 하는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장점이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연애할 때 남자가 모든 일에 결정도 빠르게 하고 리더십도 있으면 ‘야, 멋있다’ 하고 반하지요.
그런데 이런 남자하고 결혼해서 살아보면, 남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독단적으로 결정하지요.
음식을 만들 때 칼이 너무 잘 들면 무 썰기에 좋지만 때로는 손가락을 베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이 남자는 참 부드럽고, 내 얘기도 귀담아 들어주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도 안 하고, 대화도 참 잘 된다.’
하는 좋은 느낌을 받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 이 남자는 남자다운 게 없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쭈뼛거리고, 리더십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 눈치나 보니, 그 아내는 답답해서 못 삽니다. 그래서 부인들은
남편에게 “강한 남자가 돼야 해” 하고 요구했다가 “부드러워야 해.” 했다가 “일 처리는 칼처럼 날카롭게 해.”
하면서 만능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교양도 있으면서 위엄도 있어야 하고, 거기다 야성적이어야
하면서도 부드러워야 하고 재미도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런 남자는 절대로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법문을 듣는 입장이니 저를 스님이라는 자리에 놓고 저의 한 가지 면만 보니까 제가 좋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같이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요? 같이 살게 되면 법문하는 저의 한 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다른 모습들도 보게 되겠지요. 그러다 보면 실망할 일도 생길 겁니다. 그런
실망들이 쌓이면 함께 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듯이 아무리 좋아 보이는 남자도
같이 살다보면 실망할 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성에 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게 다 나쁘다거나 모든 게 다 좋은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과 같이 살 수밖에 없다면, 또는 계속 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다면, 그 사람의 단점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장점과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그 사람의 특징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아침에 팀원들과 함께 했던 글입니다.
많이 느끼는데 변하지 않아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