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가파르나움을 떠나 고향 나자렛으로 가십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안식일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며 주님께 호기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러나 이 호기심은 거기에서 멈추고 더 이상 신앙으로 발전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신앙과 삶의 이중성은 늘 말씀을 가로막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 사람들은 놀라운 지혜가 어디서 오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율법서 중 지혜서는 지혜에 대해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혜는 주님께로부터 오며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다.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법칙이다. 지혜로우신 분은 오직 한 분, 두려우신 분이시며, 당신의 옥좌에 앉아 계신 분이시다. 그분은 지혜를 만들고 지켜보며 헤아리시는 주님으로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과 모든 인간에게 지혜를 너그러이 내리시고, 특히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풍부히 나누어 주신다."(집회 1, 1-10 참조)
‘특히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풍부히 나누어 주신다.’라는 마지막 말씀. 그들은 성부 하느님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가 예수님라는 사실을 신앙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선입견과 닫힌 마음이 그들의 신앙을 막고 맙니다.
닫힌 마음!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완전한 자유는 우리를 구원하게도 하지만 이렇듯 구원에 멀어지게도 합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이미 당신이 메시아가 아닌 목수이며 마리아의 아들이고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라는 사실을 다 아니 너의 가르침은 거기서 멈추어라’라는 식의 닫힌 마음이 모든 진리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눈과 귀를 막아버립니다.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따위의 인연因緣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은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열린 가슴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구원과 행복을 보장해줍니다.
우리는 신앙과 삶을 분리시키지 말고 삶 속에 신앙을 중심으로 두어야 합니다.
삶 가운데 느끼는 신앙과 현실의 괴리, 그 괴리가 성령의 초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시고 정성을 다하는 자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께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