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아침에 / 이해인 수녀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이마에 재를 얹어 주는 사제의 목소리도 잿빛으로 가라앉은 재의 수요일 아침 꽃 한송이 없는 제단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삶은 하나의 시장기임이 문득 새롭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자기의 죽음은 너무 멀리 있다고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나도 숨어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발견에 차츰 무디어 가는 내마음을 위해서도 오늘은 맑게 울어야겠습니다. 먼지 낀 마음의 유리창을 오랜만에 닦아 내며 하늘을 바라보는 겸허한 아침 땅도 사람도 가까워질 수 있음을 새롭게 배웁니다. 사랑없으면 더욱 짐이 되는 일상의 무게와 나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 이 또한 기도의 시작임을 깨닫는 재의 수요일 아침 입니다.